그는 왜 결혼앨범을 헌책방에 두고 갔을까

문화

그는 왜 결혼앨범을 헌책방에 두고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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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 찾을 수 없을까?"
 
어머니가 8살 때인가 사진관에 가서 찍었다는 사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그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단발머리 소녀가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을 손목시계를 차고 다소곳 앉아 있는 사진. 언제부턴가 그 사진은 행방이 묘연해졌다. 앨범에다 보관해 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결국 그 사진을 찾는 건 포기했다. 아마 어느 책 갈피에 숨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툭, 하고 나올 때가 있겠지.
 
그런데 어머니의 소녀 시절을 담은 사진을 찾다 우연히 발견한 이 사진, 외가 식구들이 모여 찍은 이 사진 속에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기 직전이라고 했다. 강한 햇살아래 어머니의 얼굴에는 짙게 나무그늘이 번져 있었다.
 
사진 속 떠들썩하고 수선스런 상황과 완벽하게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였다. 사진이 진실을 말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무수한 망(網)과 점(點) 사이에 진실이 스며 있음을 나는 안다. 그날 어머니에겐 어떤 마음 시린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단지 찰나에 잡힌 환영 같은 슬픔이었을까?
 
카메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말 그대로 렌즈 앞에 놓인 그 무엇인가의 흔적이었기 때문에, 사진은 사라져간 과거와 떠나간 사람을 추억케 해주는 데 있어서 그 어떤 그림보다도 탁월했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 썼던 것처럼 사진은 "사라져간 과거와 떠나간 사람을 추억케"하기 때문에 책 갈피에서 찾은 물건 중 가장 오라가 강하다. 주인 잃은 책과 관련 있을 어떤 사람의 과거를 마주하면 묘한 감정이 인다. 책과 사진과 사진 속 누군가와 나와 책방과 무엇으로도 볼 수 없는 투명한 인연의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게 만드는 그 묘한 감정은 다시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실감과 맞닿아 있다.
 
일상 사진부터 결혼앨범까지... 책방에 놓고 간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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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두고 간 책 꾸러미 속엔 결혼앨범이 들어 있었다. 직접 책을 정리해서 가져 왔다면 결혼앨범이 든 줄 분명 알았을 텐데. 만약 그 자리에서 어떤 책이 있었는지 확인했다면 바로 돌려주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결혼앨범을 두고 간 그를 찾아 연락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는 걸로 마음을 정했다. 언젠가 그가 책방을 찾을 때 챙겨서 돌려줄 참이다.
 
폐지를 모으는 동네 할머니께서 가져온 책 속에 들어 있던 사진엔 연인이 서로 껴안고 활짝 웃고 있었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봐선 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쯤이라 짐작되었다. 그 시절을 저들처럼 보냈던 나의 경험이 사진이 찍힌 것이 언제쯤인지 알려주었다. 아름다운 청춘 시절의 한 조각이 낡은 책 속에서 떨어져 나온 듯 선명한 컬러사진이었다. 그들은 사진처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까.
 
"여기 책 속에 사진이 있어요."
 
책방에 들어오는 모든 책을 모두 훑어볼 수는 없다. 가끔 손님이 책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찾아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손님이 책에서 찾은 사진은 친구들끼리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평상복을 입고 한껏 멋을 낸 여고생들인 듯했다.
 
이 사진이 들어 있던 책이 책방에 왔을 때 이 책을 소유하고 있던 이의 연락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공과금 영수증에 남아 있는 연락처와 이름이 그녀의 것이라 생각했다. 직감이긴 했지만 책방을 하며 이런 직감은 거의 틀린 경우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스스로 책과 물건들을 정리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책, 갈피에서 찾은 물건"을 모아두는 상자에 넣어두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해야 할까?
 
65년 전 사진 속 소년들 중 책 주인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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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7년째 헌책방을 꾸리고 있지만 주인 잃은 책이 책방까지 들어오는 사연은 대부분 슬프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어떤 물건이 있던 자리를 떠난다는 건 곧 사랑을 줄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니까. 책을 읽을 수 없을 만큼 건강이 나빠지거나 책을 아끼던 이가 세상을 떠나 버려진 책들이 책방에 올 때는 책들도 그만한 우울을 품고 있는 듯하다.
 
만약 본인이 정리했더라면 분명 빼놓거나 따로 보관했을 물건들이 책과 함께 책방에 왔다면 필시 슬픈 사연이 배경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구도 자신의 행복했던 지난날을 담은 사진을 버리진 않을 것이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는 드물 것이다. 아무래도 사진을 챙길 수 없는 상황이었거나, 챙길 사람이 사라진 거라 생각할 수밖에.
 
단기 4288년 5월 18일. 1955년에 찍힌 기념사진은 책방에서 보관하고 있는 꽤 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전쟁의 포화가 미치지 않았던 듯 교정엔 큰 나무가 서 있고 건물은 훼손된 것 없이 깨끗하다.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어른스런 표정을 짓고 학생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5월이면 입학식도 졸업식이 있는 달도 아니고 사진의 배경을 보면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간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일이 있어 이 사진을 찍었던 것일까.
 
사진 속 10대였던 그들은 지금쯤 적어도 팔순을 넘겼을 것이다. 사진은 남았으나 젊음은 간 곳 없이 떠나 버렸다. 아마 이 사진의 주인공이었던 소년은 누굴까,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분명 책을 좋아했을 것이다. 결국 인생의 어느 시기에 책을 정리해야 할 때를 맞이했겠지. 평생 모으고 읽었던 책을 누군가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헌책방으로 보낼 때(보낸 걸 알게 될 때) 심정은 어떨까.
 
가끔 손님이 책과 잃어 버린 사진을 찾아 책방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경우는 딱 한 번뿐이었다. 사진이 아닌 아버지의 편지를 찾는 손님이었다. 책 속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편지는 아무리 찾아도 존재하지 않았다. 책 갈피에 끼워두고 잃어버린 물건은 우연이 아니면 찾기 힘들다. 그 우연을 마지막에 경험하는 이가 바로 헌책방 책방지기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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