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은 지난 2월 8일 2020년 상반기 평화 책을 골랐습니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그리고 코스타리카가 영원토록 중립을 하겠다고 나서서 평화를 이뤄가고 있듯이 우리나라도 영세중립을 하여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2013년 3월 5일 시민모임 "으라차차영세중립코리아"가 태어나면서 외친 말입니다.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은 "영세중립협회"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영세중립을 해야 하는 까닭을 알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모임을 만들 때 함께 했던 이들조차 영세중립은 말할 것도 없이 평화란 낱말이 가슴에 와서 착 안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윤구병 선생님을 모시고 다달이 평화 책을 두 권 읽고 첫 번째와 세 번째 수요일 오후에 만나 평화 책을 읽은 느낌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가슴에 와 닿지 않고 퍽 오래도록 머릿속에만 맴돌았습니다. 한 해 남짓 지나자 그제야 어렴풋이나마 평화를 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 바탕에서 시민들에게 영세중립을 알리기에 앞서 평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싶어 나라 곳곳에 평화도서관을 세워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도서관을 만들더라도 하나 세우는데 몇천만 원에서 1억은 있어야 했습니다. 안 되겠구나 싶었지요. 그래도 주저앉을 수는 없어서 고민하다가 밥집이나 찻집 또는 집 앞이나 길섶에 책꽂이 하나 들여놓거나 내놓고 평화 책 여남은 권 꽂아놓거나 버려지는 냉장고나 장이 그대로 평화도서관이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평화를 퍼뜨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도서관장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평화도서관 이름을 "꼬마평화도서관"이라 짓고 2014년 12월 9일 보리출판사 1층 카페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그 뒤로 아픔이 깃든 역사 터를 비롯해 반찬가게, 초등학교와 중학교 복도, 연립주택 현관 해서 지난해까지 서른여섯 곳에 문을 열었습니다.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은 그동안 해마다 두 차례 평화 책을 골라 한 번에 다섯 권에서 많게는 십여 권에 이르는 평화 책을 꼬마평화도서관에 보냈습니다. 2020년 상반기 평화 책을 고른 열쇳말은 "다른 나를 아우르는 내가 빚는 평화 세상"입니다. 다음은 2020년 상반기에 보낼 책입니다.
<나는요>
나는 누구일까요? 겁이 많아 조그만 소리가 나도 깜짝깜짝 놀라고, 스스로 해냈을 때 기뻐 춤을 춥니다. 뭘 골라야 할 때 뭐가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며,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까먹을 만큼 자주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기도 한 내가 돌아 보입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자고 일어나니 집이 없어져 당혹스러워하는 아이 셋 딸린 멧돼지 엄마. 사람들은 멧돼지가 사는 산을 허물어 버립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사람이 사는 도시로 나와 떠밀리다 드디어 자리를 잡는데…
<편지 받은 딱새>
알을 낳으러 시골집을 찾은 딱새 부부. 지붕 틈은 쥐가 들어올까 봐, 굴뚝은 매캐한 연기가 나서 고개를 젓다가 노란색 우편함에 둥지를 틉니다. 태어난 새끼들은 집배원 아저씨가 우편함에 봉투를 넣고 간 편지를 가지고 장난을 치다 더럽힙니다. 딱새 부부는 집주인 할아버지가 성을 낼까 조마조마합니다. 뜻밖에 웃으며 편지를 집어 들고 간 할아버지. 그 뒤에 망치질 소리가 들리더니 노란색 우편함에는 편지가 들어오지 않는데….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 세계>
"빨아 놓은 쫄바지가 다 말라 줄에 걸려 있었다. 엄마는 틀림없이 그 쫄바지를 입으라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쫄바지를 잡아당기는 척하면서 물이 담긴 바가지 안에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엄마, 쫄바지 물에 빠졌어!" 했다. 엄마는 달려와서, "어머나! 어떡하지? 일단 아무거나 입어라."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날아갈 듯 좋았지만 겉으로는 섭섭한 척했다."
"손 씻는 세면대 말고 대걸레 빠는 세면대가 불편해서 문제다. 내 키하고 약간 비슷해서 걸레를 올려놓으면 걸레 손잡이가 위로 올라가서 내가 팔을 뻗어서 위로 들었다가 놨다가 해야 한다. 그래서 팔이 막 아프다."
우리는 아이가 겪는 어려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아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려고 하기나 했을까요.
<아이들 파는 나라>
세계 국제입양인 절반에 이르는 사람이 대한민국 아이입니다. 아셨어요? 경제 발전을 앞세워 아이 인권을 짓밟으며 국제입양을 이끌어온 정부를 고발하는 책입니다. 1953년에 국제입양을 한 뒤로 이제까지, 수만 명이 해외로 입양됐습니다. 국제입양을 시작한 까닭은 전쟁이었습니다. 휴전한 지 70년이 다 되어가고 세계 경제 10위 권에 있다는 대한민국이 아직도 핏덩이들은 난민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선량한 차별주의자>
"여긴 아프리카 아이가 없다." "피부색이 달라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보육료를 부담하기 힘들 거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외국인 아이를 돌려보내며 한 말이랍니다. "다문화"라는 말은 여러 나라 문화를 아우르겠다며 만든 낱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차별하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됩니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봐오던 "당기시오"라고 붙은 문이 누구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는 것은 아십니까.
이 책 여섯 권은 3월에 꼬마평화도서관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여섯 달 동안 평화 책을 고르는 살림지이들이 읽은 책은 스무 권에 가깝습니다. 그 가운데서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하도록 만든 책들이 있습니다.
택배 까대기를 하며 겪는 아픔을 그린 이종철 만화 <까대기>와 유엔난민홍보대사 정우성이 쓴 난민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장애시설에서 살고 있는 동생을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며 겪는 일을 그려내고 있는 <어른이 되면>과 이주민 아이들이 겪는 아픔을 그린 <아이들의 평화는 왜 오지 않을까> 하고 문선희씨가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살처분해 묻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린 <묻다>가 그것입니다.
앞으로 힘을 더 길러서 더 많은 평화 책이 꼬마평화도서관에 놓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