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상징이 된 파란색, 돼지 때문에?

문화

프랑스의 상징이 된 파란색, 돼지 때문에?

국가와 단체, 조직을 홍보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일이 바로 색깔과 로고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당만 보아도 다양한 색을 골라서 사용하고 자신들을 표현한다. 민주당은 파란색, 자유한국당은 빨간색, 국민의당과 그 파생 정당들은 녹색, 바른미래당은 민트색 등이다. 색을 통해서 자신들을 구별하게 하는 것이 직관적이고 강한 시각적 효과를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파란색은 오랜 세월 한국 정당사에 쓰여왔다. 한국의 보수 정당들은 파란색을 사용하여 정당 색을 표기했고, 새누리당이 파란 색을 버리고 빨간 색으로 갈아타자 이번에는 민주당이 파란색을 채택, 현재까지 파란 색으로 그들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파란색을 상징으로 쓰는 국가도 있다.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와 파란색, 백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으로 쓰인다. 그런데 한 역사서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이 아니다. 프랑스가 처음부터 파란색을 주로 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책에 따르면 다양한 색을 물리치고 파란색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돼지 충돌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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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세사학자 미쉘 파스투로의 '돼지에게 살해된 왕'은 제목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일단 표지의 돼지부터가 별로 평범해 보이지 않아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돼지는 지금도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약간(?) 귀여운 외모와 나쁘지 않은 지능을 가졌지만 탐욕의 상징이기 때문에 지금도 다른 사람을 돼지라고 부르는 것은 멸칭에 속한다. 중세 프랑스에서도 돼지는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고 한다. 
 
1131년, 프랑스 왕 루이 6세의 장남 필리프가 파리 근교에서 낙마 사고로 죽었다. 그는 이미 2년 전에 대관식을 올리고 아버지와 공동으로 왕위에 오른 자로, 왕국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있었는데 돼지가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말이 넘어졌고, 필리프는 낙마하면서 크게 다쳐 숨을 거두었다.
 
왕이 사냥에 나서서 용감하게 멧돼지를 사냥하다 죽었다면, 이는 전사다운 죽음이 될 수도 있었다. 과거의 사냥은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거에 말을 타고 사람들을 지휘하는 행위 자체가 힘과 지위의 상징이자 통치행위였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경우엔 그런 경우도 아니라, 그냥 돼지에 부딪힌 사고였다.
 
가장 고귀하고 성스러운 축복을 한 몸에 받아야 할 왕의 장남이 허무하게도 돼지에 부딪히는 바람에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필리프를 대신해서 성직자가 될 예정이었던 루이 7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그는 실정을 거듭했다. 그가 참여한 십자군은 실패했고, 아내와 이혼하면서 아내의 영지가 프랑스 손을 떠났다.
 
돼지 충돌 사고는 왕조의 명예와 위신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인들은 신이 내린 벌이라고 수군거렸다. 왕과 그의 측근들에게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계기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때 프랑스의 지배적인 종교였던 가톨릭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서구에서는 성모 마리아 숭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루이 7세와 그의 자문 생드니 수도원장 쉬제르,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는 성모 마리아의 도상에서 파란색과 백합을 가져와서 왕국의 문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쉬제르는 수도원 교회의 창으로 파란색 색유리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하여 파란색이 자리잡는데 영향을 끼쳤다.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는 백합이 성모 숭배와 결합하여 순결을 상징하던 흐름에 합류하여 성모를 백합에 빗대어 나타냈다. 저자는 루이 7세의 치세 말기에 파란색과 백합꽃 문양이 점차 사용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로 인해 다른 국가에선 문장에 용맹한 야수, 예를 들면 사자(노르웨이)나 독수리(신성로마제국, 폴란드)가 쓰인 반면에 프랑스에서는 파란색과 백합이 사용되는 풍습이 자리잡았다. 성모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색과 식물을 통해 왕을 나타냄으로써 명예를 되찾고 오점을 정화한 것이다. 이후 파란색이 왕국의 상징이 되자 프랑스 왕은 파란색 옷을 입게 되었고, 파란색의 위상도 덩달아 상승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프랑스와 파란색, 백합은 필수적인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성모 마리아의 백합은 왕실의 것이 되었고, 천상의 여왕을 위해 마련된 파란색은 궁극적으로 카페왕조의 것이 되었다. 그 뒤 몇 세기가 지나면서 파란색은 더 이상 가문이나 왕조의 것이 아니라, 군주제의 것, 나라의 것, 마지막으로 국민의 것이 되었다. 파란색은 앙시앵레짐에서는 이미 완전히 프랑스의 색이 되어 있었다. -19P
 
장래에 있을 재앙을 암시하는 듯한 불쾌한 사고, 복선처럼 느껴지는 전조, 이를 뒤엎기 위한 분위기 전환, 아름답고 깨끗한 이미지의 도입 등은 현대 정치나 사회에서도 자주 쓰이는 일이다. 이 책은 과거에도 문장과 상징을 통해 불길한 요소를 제거하고 위신을 회복하는 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사건 전개와 관련하여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중세에 돼지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돼지를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고 사람들이 돼지와 관련된 일에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를 설명하는데, 이를 통해 과거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동물과 식물, 색이라는 상징을 통해 보는 역사도 다른 역사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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