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잘 알려진 박도 작가가 어린이를 위한 책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을 사계절 출판사에서 펴냈다. 표지에 그려진 만화 일러스트가 책이 어린이용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정작 나는 "어린이용"은 어른들 책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었다.
안중근(1879~1910) 의사야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인들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좋아하는 독립운동가다. 그의 삶은 많은 책과 드라마, 영화, 그리고 뮤지컬 등으로 재구성되었고, 사람들은 짧지만 강렬한 그의 삶에서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는 일제가 한국을 강제병합하기 1년 전에 하얼빈에서 일제의 한국 침탈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 처단한 뒤,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그는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나라를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라고 하는 유언을 남겼지만,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의 유해는 1세기가 흐르도록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안중근 의사가, 해방 다음 해에 백범 김구 선생이 조성한 효창공원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묘역 왼쪽에 가묘로 모셔져 있는 이유다. 건국 공로 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았지만, 유해조차 찾지 못한 현실은 아프고 죄스럽다.
초등학교 때 누구나 안중근 전기 등으로 그의 삶과 하얼빈 의거쯤은 섭렵했을 것이다. 비록 그 구체적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남은 기억의 고갱이는 그가 하얼빈역에서 국적 이토를 처단했다는 사실이고, 그는 말미암아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전기적 사실(史實)은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될까. 책을 펴면서 궁금했던 점은 그거였다. 어린이용인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은 박도의 글과 송진욱의 그림으로 구성했다. 이야기 중간에 만화 형식의 이야기나, 전면 삽화 따위가 쓰인 것은 어린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일 것이다.
의거를 둘러싼 서사의 입체적 전개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는 구태의연한 안중근의 일대기를 평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야기는 하얼빈 의거, 이토를 거꾸러뜨린 그의 거사를 둘러싼 며칠 간의 서사를 중심으로 긴박하게 입체적으로 전개된다. 서사의 주역인 안중근의 심리 변화와 태도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주인공 안중근과 그와 거사를 같이한 동지들과 나누는 대화, 당시의 연해주나 하얼빈 상황 등도 당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사실감을 얻고 있어서, 그게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이 빚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박도 작가가 일찍이 백범의 암살 배후를 밝히려는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싣자, 독자들이 미국에 가서 조사할 수 있도록 4천만 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준 이야기는 마치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이야기다. 권중희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을 찾아 46일 동안이나 1만여 상자에 들어 있는 서류들을 뒤질 때 그는 예순이었다. (관련 기사 :
지하의 백범 선생이 등 두드려준 듯)
이후,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역사적 진실 찾기는 중국 현지의 독립운동 유적을 답사하고 거기 묻힌 인물과 이야기를 찾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에 앞서 밟았던 길을 되짚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안중근 의거 꼭 100주년이던 2009년 10월 26일 우리나라를 출발하여 러시아 연해주로 갔다. 거기서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나라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리고자 갔던 그 길을 곧이곧대로 뒤따랐다. 안중근 의사 마지막 길의 출발점인 크라스키노에서부터 순국한 뤼순 감옥까지 답사했다. 당시와 똑같은 교통 기관을 이용하면서 아흐레 동안 한 치 어긋남 없이 유적지를 샅샅이, 낱낱이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현지 역사가에게 유적지에 대한 증언을 자세히 듣고, 카메라로 죄다 촬영해 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20년 넘게 독립운동, 독립운동가, 임시 정부, 한국 전쟁 등을 연구하고 현장을 답사하며 자료 사진을 찾아 국내에 소개해 온 그의 이력은 적어도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을 쓰는데 과부족 없는 자격이다. 이는 안중근의 연대기를 참고하여, 순전히 상상력으로 하얼빈 의거 전후를 기록하는 일과 단순히 비교할 수 없다.
작가는 "안중근이 거사를 위해 차근차근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을 찾고, 비용을 구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긴박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모습, 거사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빠르지만 치밀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출판사 책 소개)했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극적인 구성은 안중근 의사의 삶과 거사를 감동적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내년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0돌이다. 작가는 내년에는 안 의사의 유해를 모셔와 "성대한 국장을 치른 뒤 비무장지대에 안중근 묘지를 만들어 온 겨레가 자유로이 참배하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힌다.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 주는 작가의 말에는 평생 교사로 살았던 이의 진정이 어려 있다.
"나는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애국자요,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어린이들에게 들려드린다. 대한의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