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도 아니고 간병기도 아닌, 오롯한 그리움

문화

여행기도 아니고 간병기도 아닌, 오롯한 그리움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려다가 "50세의 딸과 80세 엄마가 한 달 동안 남미를 돌아다니다"라는 문구에서 한동안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2년 전 나는 50세의 아들이었고 내 엄마는 80세였다. 엄마는 이미 2002년에 중풍으로 한 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내 엄마는 17년 동안 환자로 사셨고 나는 간병인과 보호자로 살았다.

어머니와 하는 여행.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다. 17년을 환자로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었던 시절이 꿈만 같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보러 가거나 생각하지 않는 일요일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엄마는 늘 "네가 왜 왔어?"라든가 "일요일인데 쉬지 왜 왔나"라는 말로 에둘러 반가워했고 나는 묵묵히 내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요양원 주변을 산책했다. 요양원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드리고 아무 말 없이 둘이서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았던 그림을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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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껏 생각했던 소풍이란 엄마를 모시고 고향 마을에 다녀오는 것, 요양원 아래에 있는 절을 다녀오는 것 따위였고 엄마를 위한 계획이란 좀 더 좋은 요양원을 물색해보자는 것 뿐이었다.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의 저자 이상원 선생은 복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함께 남미 여행이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지의 풍경이나 문화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통찰력이 엿보이는 대목이 있더라. 국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적을 하나의 가정으로 보는 우리와는 달리, 필요에 의해서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남미 사람들의 국적에 대한 개념의 차이를 설명한다든가 스페인어의 중심지는 스페인이 아니고 남미라는 지적에 이르기까지 감탄을 하게 되는 대목이 많았다.

두 번째 여행은 남미를 여행했으니 북미를 여행하려나 생각했다. 내 생각과는 달리 엄마와 남미 여행을 마치고 온 다음 날 엄마는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두 번째 여행은 7개월간의 이별 여행이었다.

이상원 선생을 동정하였다. 나는 17년간을 엄마의 간병인과 보호자로 살아왔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엄마가 살아계셔서 몹시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달 후에 돌아가실 운명이 지워진 엄마를 지켜보는 7개월을 어떻게 버티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상원 선생은 슬기롭고 무리 없이 어머니를 잘 보내드린 것 같다. 본인만큼 간병에 열중하지 않는 형제자매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망정 엄마에게 형제간에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것으로 보이니까. 다른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니가 원하는 방향대로 생을 마무리 하게 도와주었으며,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에 몹시도 숙련된 가톨릭 성직자들의 도움을 받아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드렸으니까 말이다.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에는 야심한 시각이나 이른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들 그러니까 병환이 있는 노부모님을 둔 자식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경험이 많았다. 부모를 떠나보내는 자식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어떻게 하면 잘 꾸려 나갈 수 있는지 도움이 되는 책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 번째 여행은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일기를 통해서 어머니가 살아온 길을 추억하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은 그러니까 여행기도 아니고 간병기도 아니다. 50년을 이 세상에서 함께 산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읽힌다.

엄마가 프랑스에 유학하고 아버지를 만나는 이야기처럼 과거의 흔적뿐만 아니라 엄마의 속마음을 읽을 때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감동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은 작가가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오래 쓴 이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책이다. 

거의 혼자서 죽어가는 어머니를 간병한 이상원 선생에게 감히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올해 초 돌아가신 내 엄마를 생각해보면 가장 원통한 것이 하필이면 독감이 유행해서 엄마를 보러가지 못한 3주 사이에 엄마가 돌아가신 것이다.

엄마를 혼자서 오래 간병한 것은 엄마와 그 만큼 더 많은 추억을 나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은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 사무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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