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학자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써서 정치사상사에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외에도 "로마사 논고" "피렌체사" 등을 썼지만 "군주론"으로 가장 유명한데, 군주론을 통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하고 군주가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군주는 함정을 눈치채는 여우이자 다른 동물을 제압할 수 있는 사자여야 한다. 힘과 지식을 모두 갖추고 강한 결단력으로 정치적 행동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정치는 일상의 도덕과는 다른 세계에 있다고 보고 현실적인 군주의 상을 모색했다.
그의 군주론은 큰 영향을 끼쳤지만 다양한 사상을 담고 있어서 처음 읽는 독자라면 헤맬 수 있다. 여기 군주론을 아직 읽진 않았지만 간단하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 군주론을 읽고 다른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고 싶어진 사람에게 좋은 책이 있다.
"카스트루초 카스타라카니의 생애"는 마키아벨리가 작성한 한 인물에 대한 책이다. 역사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이탈리아에 살았던 정치인이자 군인 카스트루초의 삶을 통해서 마키아벨리가 말하고 싶은 바를 펼친 일종의 "군주론 사례집"이라고 보면 된다. 마키아벨리는 카스트루초의 삶을 서술, 혹은 날조하여 자신이 원하는 지도자의 상을 그렸다.
책에 따르면, 카스트루초는 중세 이탈리아 사람이다. 어느날 그는 포도밭에서 발견되어 운좋게도 인근에 있던 성직자에게 입양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리더십을 지녀 전장놀이에서 아이들의 모범이 되었다. 때문에 다른 군인이 카스트루초를 입양했고,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자신의 군재를 뽐냈다고 한다.
그는 뛰어난 전술능력으로 자신의 적과 전쟁을 벌여 적은 피해로 그들을 크게 격퇴했다. 결국 그는 사람들에 의해 이탈리아 소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를 견제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생기자 칼같은 결단을 통해서 적을 공격하고 배신자들은 처형했다. 자신에게 반기를 든 사람은 반란을 그만두더라도 용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가족을 몰살시키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게 위험이 되고 반역을 시도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어물쩍거리다가 일을 망치거나, 제대로 결정을 하지 못해 남에게 미루는 일이 없었다. 그는 분열한 적을 칠 때는 양쪽을 다 돕는 척하고 모두 죽여서 손쉽게 땅을 늘리는 등 책략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뛰어난 군재도 한순간, 수백의 피해로 수만명의 군인을 격파하는 등 활약한 그는 전장터에서 이른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는 죽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전쟁을 할 능력이 없으면 평화를 지키는 데 노력하고, 다른 국가들은 믿을 수 없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유언을 남긴 후 죽는다.
이러한 세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신력과 그의 위치에 대한 것도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전쟁을 치르는 것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평화의 기술로 통치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74P
문제는 이 책의 내용 상당수가 거짓이라는 점이다.
놀랍게도, 해제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아예 카스트루초를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게 그냥 자기 마음대로 묘사했다. 마키아벨리는 카스트루초가 전설 속 인물들처럼 어느날 갑자기 그냥 포도밭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나 카스트루초에 대한 기록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말한다. 그를 배경으로 쓰인 다양한 일화와 명문들은 마키아벨리의 손질이 가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가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와 싸운 것도 사실이고, 다양한 전쟁장을 누비며 이탈리아를 돌아다닌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이동하고 퇴각하는 근거가 되었던 사실들은 상당수가 현실과 다르게 적혔다. 또한 그는 전쟁터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극적인 요소를 위해서였는지 마키아벨리는 그가 전장에서 죽은 것으로 써놓았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손질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해제를 쓴 김상근 교수는 아마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의 "사례편" 격으로 어떤 리더가 구체적으로 모범적이고 훌륭한 사람인지를 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었나 추측한다. 확실히 현실과 다른 모습이지만, 카스트루초의 생애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했던 훌륭한 리더와 매우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결단력이 필요할 때 절대 머뭇거리지 않는 태도, 강한 의지가 특히 흡사하다.
또한 카스트루초의 삶은 모든 인간은 포르투나(운명이나 운)에 의해 얽매여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카스트루초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널리 펼치고 자신의 뜻을 세워 인생을 살았지만 포르투나에 따라 이른 죽음을 맞았다. 마키아벨리는 이를 통해서 모든 인간이 포르투나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표현했다.
"인간"에 대한 리더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누구도 포르투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 두 가지를 알리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에 대한 통찰을 알리기 위한 의지가 기록에 선행한 셈이다. 그의 사상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도 포르투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항상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