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운영 초창기에는 저희에게 영향을 많이 준 책들 위주로 입고했는데, 그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희가 읽어온 책들의 역사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23쪽/서울 "밤의 서점")
똑같은 이름인 큰책집이 나라 곳곳에 꽤 많습니다. 이들 큰책집은 어느 고장에서나 똑같이 생겼고, 책시렁도 거의 같습니다. 큰책집을 가만히 보면 "베스트셀러"가 가장 좋은 자리에 널따랗게 자리를 잡습니다. 이다음으로는 학습지하고 참고서가 널찍하게 자리를 잡아요. 새로 나오는 온갖 책을 한눈에 마주할 수 있다는 대목은 좋다고 할 테지만, 큰책집은 고장마다 다르거나 책집마다 다른 멋이나 맛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다 다른 이름인 마을책집이 나라 곳곳에 부쩍 늘었습니다. 이들 마을책집은 어느 고장에서나 다르게 생겼고, 책시렁도 다 다릅니다. 마을책집을 가만히 보면 "베스트셀러"가 없기 일쑤입니다. 그 마을책집에서 사랑받는 책을 돋보이는 자리에 놓기도 하지만, 마을책집에는 학습지도 참고서도 없습니다.
오직 "읽는 책"만 두는 마을책집이에요. 더욱이 마을책집은 그 고장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이들 책을 눈여겨보는 터라 어느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가더라도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굳이 베스트셀러는 표시를 해놓지 않아도 알아서 독자들이 구매를 하는데, "베스트셀러 코너를 따로 만들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오픈 전부터 많이 했어요 … 베스트셀러 코너를 만들지 않기로 했어요. 굳이 그 공간이 없어도 잘나가는 책들이기에 다른 책들을 더 비중 있게 소개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125∼126쪽/구미 "삼일문고")
책집마실을 이야기하는 <전국 책방 여행기>(석류, 동아시아, 2019)를 읽었습니다. 책집일꾼으로 지낸 적이 있다는 글쓴님은 책집에서 일할 적에는 다른 고장 다른 책집을 돌아보기 쉽지 않았다지만, 일을 그만두고 난 뒤에는 홀가분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해요. 이 책은 "책집 나들이"를 다닌 발자취를 들려주기도 하고, 여러 책집지기가 저마다 어떤 뜻으로 책집을 열면서 하루를 짓는가 하는 목소리를 고스란히 옮기기도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나라 곳곳 "○○문고 ○○지점"을 돌면서 목소리를 듣는다고 할 적에 다 다른 삶이나 이야기를 얼마나 들을 수 있을까요? "○○문고"를 비롯해서 누리책집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을 만나도록 잇는 구실을 합니다. 이러한 구실도 좋다고 여겨요. 그러나 큰책집은 책집지기나 책집일꾼이 책손님하고 만날 틈이 없다시피 합니다. 마을책집은 책집지기나 책집일꾼이 언제나 책손님하고 만나면서 온갖 이야기를 지피고, 책모임이나 책수다를 조촐히 펼 수 있어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바로 마을책집에서 누릴 수 있어요.
"저는 다른 일을 안 하고 책방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닫힌 책방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청소를 하고, 청소 후에 차도 한잔 마시고 그러는 시간이 참 좋아서 계속 책방만 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문을 열 때마다 해요." (154쪽/순천 "책방 심다")
마을책집 열한 곳 목소리를 옮기는 <전국 책방 여행기>는 책끝에 서른세 곳 마을책집을 짤막하게 알리는 글을 붙입니다. 얼거리나 줄거리를 보면 "책방 여행기"까지는 아니고 "책방 인터뷰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 다른 고장에서 마주하는 다 다른 마을책집을 글쓴님 스스로 어떻게 느끼거나 누렸는가 하는 이야기는 좀 얕습니다. 그래도 이 책이 다 다른 살림을 마주하면서 다 다른 우리를 느끼도록 북돋우는 마을책집으로 사뿐히 나들이를 다니는 이웃한테 조그맣게 징검돌 노릇을 하겠지요.
다리품을 팔고, 찻삯을 들이고, 때로는 길손집에 머물기도 하면서, 책에 찍힌 값 그대로 두 손에 책 한 자락을 품으려고 나들이를 다니기에 책집마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를 새삼스레 마주하고, 마을 한켠이나 멧골 한켠에 조용히 깃든 책집에서 숲바람을 마시려고 하는 책집마실이에요. 이웃을 새롭게 만나면서 스스로 즐거운 책집마실입니다.
"남녀노소에게 편한 공간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공생이라는 말이 한글을 잘 모르는 할머니나 어린아이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도 있어서 이름을 "오늘은 책방"으로 바꾸게 되었어요 … 새책은 저희가 원하는 인문학이나 문학 서적을 구비할 수 있는 게 장점이고요, 헌책은 여러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고, 어쩌면 버려질 수도 있었던 책이 책방으로 건너와서,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좋은 것 같아요." (238, 240쪽/경주 "오늘은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