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일찍 하면 역효과? 그 엄마가 잘못 알고 있는 것

문화

성교육 일찍 하면 역효과? 그 엄마가 잘못 알고 있는 것

나는 혼자 했던 성교육

내 성교육은 중학교 1학년 때 시작됐다. 앞에 앉은 친구가 쉬는 시간만 되면 뒤로 돌아앉아 뭘 자꾸 얘기해줬다. 영화 <건축학개론> 속 납득이처럼 두 팔을 요리조리 이렇게 저렇게 휘둘러대기도 했고, 부모님 방에서 몰래 본 "어떤" 비디오 영상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친구의 부모님은 아이들 앞에서도 과감하게 스킨십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부모님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도 본 적 없는 터라, 친구의 말에 대체로 충격을 받았다. 이 세상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아주 자극적이면서도 진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성교육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집에서였다. 동네 친구인 우리는 중학교를 같이 다니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헤어졌는데, 그래서였을까. 친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자기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듯했다. 성에 관해 뜬구름 잡는 개념 정도만 알고 있던 우리들과 달리, 친구는 성에 구체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는 요즘의 북유럽식 성교육을 스스로 터득해나간 거였다. 

친구는 남성과 여성 성기의 모양과 각 명칭에 빠삭했다. 깊은 탐구심의 발로였는지 본인 성기를 유심히 들여다보기까지 했단다. 그땐 "야, 너 참 주책이다. 넌 애가 왜 그러냐!" 하며 친구를 타박했다.

친구가 어딘가 잘못된 길로 빠진 듯해 "야, 야, 정신 차려!"라고까지 말했는데, 이제와서보면 내가 틀렸던 모양이다. 이후 친구는 내 우려와는 달리 잘못된 길이 아닌 4차선 국도 정도는 되는 길로 잘 빠졌고, 여전히 유쾌하고 화통한 성격 그대로 잘 지내고 있다. 

내가 친구들의 도움(?)과 자력으로 성에 눈을 떠 갈 즈음, 어른들은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단 하나도. 아마 속으로는 아슬아슬해 하며 제발 우리가 알아서들 잘해 나가길(?) 바라고 있었을 테지. 선생님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우리더러 자꾸 조심하라고만 했다.

학교에서 성교육 관련 영상을 본 적 있긴 하다. 그게 과연 제대로 된 성교육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서양 여성이 아이를 낳는 영상이었다. 그 여성은 몸을 움찔움찔하다가 비교적 쉽게 아이를 순풍 낳았다. 그땐 그저 아, 서양 여자들은 애를 저렇게 쉽게 낳는구나, 정도의 감상을 느꼈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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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언니에게 주려고 산 책이었다. 우리는 비록 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언니는 조카에게 해주길 바라서였다. 조카가 2살 때 고추를 만지작만지작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뭘 하든 마냥 귀엽긴 했지만 속으론 걱정되기도 했다. 저렇게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건가?

조카가 4살 때 할머니에게 "할머니도 고추 있어?"라고 묻는 걸 본 적도 있다. 나는 저 멀리서 큭큭 웃으면서도 한 편으론 조카가 나한테 묻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과연, 아이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줘야 할까? 성교육 전문가 심에스더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이 성에 대해 일찍 알수록 성적인 행동을 빨리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곤 해요.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요. 오히려 미리 알려줌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잘못된 행동을 예방하는 힘을 키울 수가 있어요. 실제로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가장 좋은 때는 4~5세 정도라고 해요. 자신의 신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때거든요."

내가 걱정했던 것, 조카가 고추를 만지작만지작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가 고추 또는 잠지를 만지며 놀거나 냄새를 맡을 때, 혹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끄럽게 뭐 하는 짓이니?""자꾸 만지면 고추 떨어져!" 같은 반응은 좋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성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거든요. 그러면 아이들은 "성적인 행동은 몰래 해야 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오히려 "손을 깨끗하게 씻고 만져야 아프지 않아!" "재미있는 냄새가 나지?"하고 긍정해준다면 호기심도 적절히 해소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다른 데로 옮길 수가 있어요."

아이가 성에 관해 질문을 해오면 어른들 대부분은 당황할 것이다. 눈만 꿈뻑꿈뻑하다가 무슨 말이라고 해야겠기에 무슨 말을 하다가 정말 아무 말이나 하게 될 수도 있다. 얼렁뚱땅 상황을 모면해 버리려 진실도 거짓도 아닌 애매한 말만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입이 굳고 가슴이 벌렁벌렁 뛰더라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언젠가 알게 될 이야기, 알아야 할 이야기라면 피하기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말해주는 게 좋"다고. 그래야 "왜곡된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다.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할 땐 대충 "그거", "저거", "그날", "거기"처럼 어른들의 민망함을 한껏 드러내는 식으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가능한한 명확하게. "그거", "저거", "그날", "거기"가 아닌 "고추", "잠지", "생리", "음경" 등 명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게 좋단다. 이런 용어를 말할 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범한 뉘앙스"로 전달하는 게 포인트.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을 할 때 내용보다 뉘앙스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책은 "성알못" 최은경 기자가 묻고, "성영재" 심에스더 성교육 전문가가 답하는 형식을 띤다. 최은경 기자가 아이들과의 일화에서 난처했던 상황을 토로하면, 심에스더 전문가가 그 상황에 적합한 리액션을 설명해주는 식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 아이가 엄마에게 키스를 하려고 한다면? 키스는 자라서 연인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면 된다. 아이들이 성역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가 먼저 "여자니까", "남자니까" 같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외에도 "초경이 빠르면 정말 키가 안 클까요?", "성 경험은 늦을수록 좋은가요?", "낙태의 책임, 남자에겐 없나요?", "청소년 데이트 폭력, 어떻게 예방하죠?" 등 어른들이 잘 알지 못해서 대답해주지 못하는 주제에 관해 어렵지 않은 수준으로 설명되어 있다. 

무엇보다 요즘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유튜브 아닐까. 만약 아이들이 유튜브를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있으며, 내용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옆에서 같이 보다가 선정적인 광고나 장면이 나오면 스킵해주거나 다른 영상을 틀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그 장면이 왜 나쁜지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또 모든 걸 아이들의 자유에 맡기는 것도 좋지는 않단다. 아이는 아이니까. 적정한 수준에서 부모의 통제는 필요하나, 이런 통제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다. 강압적으로 통제를 하기 위한 간섭이 아니라, 이해와 대화를 바탕으로 한 관심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나와 언니는 가끔 조카가 언제 연애를 하게 될지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친구의 초딩 아들이 2년째 장기 연애 중인 걸 보면, 어쩌면 조카도 몇 년 안에 좋아하는 아이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다. 아직은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조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마음을 소중히 대하고 싶다.

어리니까, 공부해야 하니까, 같은 말로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한편 걱정도 된다. 혹시 조카가 상대의 마음과 몸에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주게 된다면, 아이를 피해자로 키우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 반대가 되어 버린다면 어떻게 할까. 

이 책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성교육을 뛰어넘어 아이들이 타인을, 이성을 배려하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을 교육시킨다. 여러 깨알 정보와 난처한 상황에서 외워두고 그대로 읊으면 좋을 다양한 문장들이 있어 좋았지만, 특히 나는 무엇보다 이 책이 아래와 같은 내용들을 담고 있어 좋았다.
 
"어른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에요.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매너와 태도가 무엇인지를 지금부터라도 세세하게 알려주면 좋겠어요." 

나는 내 조카가 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타인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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