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담화는 북한식 트위터다" (고유한 동국대 북한학 교수)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정치"에 북한이 "담화 정치"로 맞대응하고 있다. 북한은 12월에만 총 6개 담화를 발표했다. 지난 3일~5일, 다시 8일과 9일 연일 담화를 냈다. 9일에는 시차를 두고 2개의 담화를 내기도 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140자 트위터를 활용해 자신의 국정 수행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가짜뉴스를 지적하며, 대외정책의 방향을 밝히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그는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행정부 인사의 경질을 트위터를 통해 발표했다.
반면 북한은 트럼프의 짧고 즉각적인 "트윗"에 대항해 담화를 빌어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고 있다.
북한 담화 발표시간만 봐도 철저히 미국을 향한 메시지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일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이 "미국이 무력 사용하면 우리(북한)도 신속하게 대응한다"라는 담화를 낸건 오후 10시 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로켓맨" 발언에 맞대응하며, 불쾌감을 드러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도 5일 오후 10시경에 나왔다. 모두 미국 워싱턴이 오전 8시일 때다. 북한이 미국 동부시각을 기준으로 담화를 발표한 것이다.
하노이 결렬 이후 지난 6월 30일에 열린 남북미의 판문점회동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북한이 담화로 즉각 화답해 북미 정상의 만남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던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7시 51분께 (5월 29일) 트위터에 "방한 중 비무장지대(DMZ)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남겼다. 최선희 제1부상은 같은날 오후 1시께 "(북미 정상의 만남이 성사되면) 양국관계 진전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남긴지 5시간여 만이었다.
북한이 "어느 매체"를 통해 담화를 발표하는지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담화의 "용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재 주민들의 접근이 어려운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를 통해 대부분의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로동신문>이나 <민주조선>은 담화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챙겨보는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에도 담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주민 대부분은 <조선중앙통신> 내용을 보기 어렵다. 북한의 담화가 주민을 고려한 내부용 메시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철저히 미국용"이라고 설명했다."북한의 초조함, 리수용에서 드러나"
그렇다면 북한은 왜 미국을 향해 연이어 담화를 발표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연말시한"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연말"까지 가져오라고 요구했지만, 미국의 "셈법"이 바뀌지 않자 초조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일기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초조함이 담화의 "발화자"에서도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담화를 발표하는 이들의 직책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 9일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의 담화가 대표적이다.
지난 11월에 담화를 발표한 이들은 권정근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 (11월 6일), 북미 실무협상의 북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11월 14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 11월 18일),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11월 14일, 11월 19일) 등이다. 북미 협상의 실무자 이거나 과거 북미 비핵화 협상의 주역들이었다.
하지만 12월에는 북한의 공식서열 3순위인 리수용 부위원장이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겨냥해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트럼프의) 막말은 중단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잇달아 내놓는 트럼프의 발언과 표현들은 얼핏 누구에 대한 위협처럼 들리지만 심리적으로 그가 겁을 먹었다는 뚜렷한 방증"라고 주장했다.
리 부위원장은 2016년 5월 외무상을 거쳐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장에 임명됐다. 이는 북한 권력의 2인자인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다음가는 서열이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리수용은 조선노동당의 모든 외교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최선희가 아무리 북미 비핵화 협상의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해도 리수용의 지휘를 받는다. 김영철, 김계관 등은 옛날 사람이다"라며 "리수용의 담화는 김정은의 생각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이 담화를 통해 미국에게 명분을 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요구하는 건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 거다. 안전·체제보장과 비핵화를 거래하려는데, 미국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서 "그래서 위기감을 느껴 모든 관계자들을 총동원해 담화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는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는 북한이 "담화정치"를 이어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비건 방한"이 올해 남은 "마지막 기회"라고 짚었다.
미국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인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북미 비핵화 실무 협상의 미국 측 수석대표다. 비건 대표의 방한 가능성은 8일 (현지시각)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식화됐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우리는 (북한과) 협상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라며 "비건 대표가 곧 그 지역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비건 대표가 판문점에서 그의 카운터 파트너인 최선희 제1부상을 만날 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고유환 교수는 "비건은 마지막 기회다. 북미가 실무회담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건이 미국의 새로운 셈법이 조금이라도 담긴 방안을 가져와 최선희를 만난다면, 다시 비핵화 협상의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게시물은 한예지님에 의해 2020-02-27 11:33:17 민족/국제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