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대 시인중에 도연명과 두보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도연명(365-427년)은 삼국지의 바로 다음 시대인 위진남북조시대를 대표하면서 자연을 노래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두보(712-770년)는 당나라를 대표하면서 빼어난 서정시를 많이 남긴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불리기까지 한다.
두 사람 다 공통적으로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인생의 고단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하여 후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사는 방식이나 생각이 비슷할 것이라고 여겨졌는데, 자식에 대해 쓴 시를 보면서 서로 대비되어 재미있고 쓴웃음이 나온다.
먼저 도연명의 자식사랑이 드러나 있는 책자(責子, 아이를 꾸짖다)라는 시를 살펴보자.
白髮被兩鬢(백발피양빈) 백발이 양 뺨을 덮고
肌膚不復實(기부불부실) 살결도 전처럼 실하질 못하다.
雖有五男兒(수유오남아) 비록 아들이 다섯이지만
總不好紙筆(총불호지필) 하나같이 글공부는 싫어하노라
阿舒已二八(아서이이팔) 서라는 놈은 벌써 열여섯 살인데
懶惰故無匹(나타고무필) 둘도 없는 게으름뱅이이고
阿宣行志學(아선행지학) 선이란 놈은 곧 열다섯이 되는데
而不愛文術(이불애문술) 아예 글읽기는 마다하고
雍端年十三(옹단년십삼) 옹과 단은 똑같이 열세 살인데,
不識六與七(불식육여칠) 여섯과 일곱도 분간 못하고,
通子垂九齡(통자수구령) 통이란 놈은 아홉 살이 다 되어도
但覓梨與栗(단멱이여율) 오로지 배와 밤만을 찾노라
天運苟如此(천운구여차) 하늘이 내린 자식운이 이러하니,
且進盃中物(차진배중물) 나야 술잔이나 기울일 뿐이지
도연명이 가난한 생활 속에서 자식에 대해 솔직하게 유머스러운 표현을 하면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아비의 입장에서는 다섯 자식이 못났어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자식의 있는 그대로를 편하게 받아들이며, 술로 마음을 달래는 유유자적함까지 보이고 있다. 요즈음 말로 하자면 자식에 대해 자유방임형에 가까운 교육관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도연명의 자식 사랑하는 모습이 아주 여실하게 잘 그려진다. 아주 속되고 친근하게 자식 사랑을 표현하여 빙그레 웃음까지 나오게 한다. 특히 자식을 시골의 대안학교 같은 곳에 보내는 부모들은 그대로 공감할 것이다. 자신들의 자식 교육관을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고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두보가 이 시를 보고 견흥(遣興)이라는 연작시에서 "세속을 떠난 도연명이 아직 달도하지 못했나(陶潛避俗翁 未必能達道) --- 아들의 현과 우를 왜 마음에 두는가(有子賢與愚 何其掛懷抱)"라고 문제를 삼았다. 세속을 떠났으면 자식에 대해서도 거론할 필요가 없는데, 왜 똑똑하니 못하니 하는 시를 짓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두보의 이러한 비판은 도연명이 자식의 교육에 대해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자식을 기르면 당연히 교육을 잘 시켜 똑똑하게 키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처지에 현과 우를 거론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도 살아가는 방식과 자식의 교육관이 다름에서 오는 차이일 것이다. 도연명은 자식을 자연 속에서 생긴 대로 살아가도록 놔두는데 반해, 두보는 세속에서 실력을 발휘하게 기르려는 것 같다. 그래서 두보는 견흥의 다른 한 수에서 자신의 아들이 똑똑함을 자랑하면서도, 전란으로 못 만나 아비구실을 다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驥子好男兒(기자호남아) 아들 기자는 총명한 아이
前年學語時(전년학어시) 지난해 말을 배울 때
問知人客姓(문지인객성) 손님의 성을 물어 기억하고
誦得老父詩(송득노부시) 노부의 시를 줄줄 외웠지
世亂憐渠小(세난련거소) 난세에 가엾게도 어린애인데
家貧仰母慈(가빈앙모자) 가난하여 어미만 바라보네
鹿門携不遂(녹문휴불수) 녹문산에 함께 못 들어가고
雁足繫難期(안족계난기) 기러기 발에 편지도 어려워
天地軍麾滿(천지군휘만) 천지에 군대 깃발 가득하고
山河戰角悲(산하전각비) 산하에는 전쟁의 슬픈 고동소리
戃歸免相失(당귀면상실) 혹시라도 돌아가 만나게 되면
見日敢辭遲(견일감사지) 만나는 날 늦다고 어찌 사양하리
이 시를 읽으면 두보는 자식이 영특하여 교육을 더 잘 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을 슬퍼하고 있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똑똑한 자식을 영재교육이라도 시키고 싶은데 못해서 괴로운 것이다. 말을 배우면서 시를 줄줄 외울만큼 영특한 자식인데, 전란으로 아비구실을 전혀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것이다.
두보의 자식 사랑에 대한 간절함이 잘 느껴지면서도, 도연명의 자식 사랑과는 많이 달라 비교가 된다. 도연명은 아이를 생긴 대로 내버려두고 키우는 자유방임형인데 비해, 두보는 똑똑한 자식을 더욱 잘 키우는 영재교육형인 것 같다. 시의 대가인 두 사람이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과 교육관이 서로 대비되어 흥미롭다.
여기에 조선시대 병자호란때 남한산성까지 인조를 수행했던 정온(1569~1641년)도 두보에 공감하며 자식에 관한 시를 남겼다. "두보(杜甫)의 견흥(遣興) 시에 차운하다"라는 제목의 시인데, 두보처럼 자식을 돌보지 못하는 아비의 서글픈 신세를 동병상련하고 있다. 전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부모자식을 흩어지게 만들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訓謨雙好兒(훈모쌍호아) 훈과 모는 사랑하는 내 아이
不見幾多時(불견기다시) 못 본지가 얼마나 되었더냐
稟質非云魯(품질비운로) 타고난 자질 노둔하지 않은데
趨庭未學詩(추정미학시) 아비의 가르침 직접 못 받았네
愚蒙誰與擊(우몽수여격) 우매함을 누가 깨우쳐 주리
寒餓愧余慈(한아괴여자) 춥고 굶주림 나의 사랑 부끄럽다
論學知行備(논학지행비) 학문을 논함은 지행을 갖춤이요
看書遠大期(간서원대기) 글을 봄은 원대함을 기약함이오
丰容隨日長(봉용수일장) 예쁜 얼굴 나날이 성장하는데
衰鬢逐年悲(쇠빈축년비) 쇠한 귀밑머리 날로 서글퍼
倘有重回日(당유중회일) 만약에 거듭 돌아가는 날 있다면
鹿門携敢遲(녹문휴감지) 녹문으로 가기를 어찌 더디 하랴
세 편의 시들이 모두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이지만, 역시 도연명의 해탈한 듯한 자식을 나무라는 시가 더욱 마음에 끌린다. 잘났든 못났든 내 자식이라 받아들이고 생긴 대로 살아가도록 사랑하면서도, 답답함을 술로 달래는 아비의 모습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옛사람들이 쓴 시를 통해 언제나 자식교육은 어렵고 부모구실도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또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그 교육관이 다르게 대비되는 모습이 흥미롭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도연명의 대범한 자식 교육관이 현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