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릉은 경주시내 탑정동에 있는데 대릉원보다 남쪽으로 남산쪽과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관람료 천원과 주차비 천원, 합쳐서 2천원만 내면 아주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왕릉도 볼 수 있고, 키큰 소나무도 많이 감상할 수 있어 좋다. 게다가 관람객도 별로 없어 호젓하고 조용하게 산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오릉의 정문은 붉은 칠을 한 네 개의 굵은 나무기둥과 그 위로 나즈막하게 올려진 기와지붕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문 오른편에 안내판이 기와지붕 형태로 크게 만들어져 안내를 잘 하고 있다.
안내문에는 오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능은 남산의 서북쪽에 해당되는 경주 분지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다섯 무덤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과 2대 유리왕, 3대 남해왕, 4대 파사왕의 임금 네 분과 박혁거세왕의 왕후 알영부인의 능으로 전해져 온다.
이는 삼국사기에 네 분의 왕을 담엄사 북쪽 사릉원 내에 장례를 지냈다는 기록과 삼국유사에서 박혁거세왕이 승천한 후 유체가 다섯으로 나뉘어져 땅에 떨어지자 이를 각각 장사지내어 오릉이 되었다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내부 구조는 알 수 없으나 겉모습은 경주시내 평지 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형태이다. 1호 무덤은 높이 약 7.86m로 가장 높고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경내에는 박혁거세왕의 제향을 받드는 숭덕전과 그 내력을 새긴 신도비가 있으며, 그 위쪽으로는 알영부인의 탄생지라 전해지는 알영정이 자리잡고 있다."
정문을 들어가면 멀리 보이는 오릉을 향해 넓은 길이 중간에 시원하게 나 있다. 길의 양옆에는 소나무와 활엽수의 큰 나무들이 즐비하게 자라나 나무공원 같은 느낌을 준다. 무성하게 자란 키큰 나무들을 둘러보면 수령(樹齡)이 상당히 오래 되어, 오릉이 일찍부터 사적지로 조성되어 식목(植木)이 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중간 길 오른편의 나무숲에는 똑같은 활엽수 몇그루가 마치 형제들처럼 나란히 늘어선 채 하늘 높이 넓게 펼쳐져 아주 인상적이다. 중간 길의 왼편에 넓게 펼쳐진 곳에도 활엽수들이 크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다. 가을에 오면 키 큰 나무들의 숲이 짙게 단풍으로 물들어 더욱 보기가 좋다.
중간 길을 계속 걸어가 오릉 앞으로 점점 다가가면 오른편 숲에는 키가 쭉쭉 높게 뻗은 소나무들이 다양한 자태로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경주의 어느 유적지를 가도 보기 어려울 만큼 키큰 소나무들이 많이 있어 소나무를 구경하는 재미가 일품이다.
오릉 앞으로 다가가면 길쭉한 네모형의 낮은 울타리 안에 크고 작은 무덤 다섯 개가 모여 있어 오릉임을 알게 해준다. 다섯 개의 봉분이 전체적으로 크지 않은데, 두 개는 중간 크기고, 두 개는 작고, 한 개는 쌍분처럼 두 개 봉분이 겹쳐져 있다.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왕릉인데도 다른 왕릉과 비교해 크지 않은 것이 의아스럽다. 신라 초기이니 국력이 부족하고 기술이 약해서 그런지, 아니면 후대의 왕들이 김씨로 바뀌어서 그런지 알기는 어렵다. 두 개의 작은 봉분도 왕릉으로 보기에는 작아 보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봉분이 깎여 줄어든 것 같다.
박혁거세 시조왕의 부부를 비롯해 2대 3대 4대왕이 같이 있으니 신라를 개국한 박씨 왕의 핵심들이 다 모여 있는데도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발굴이 되지 않았는지 특별한 부장품이 나왔다고 자랑하는 것도 없다. 신라시조왕의 사적지라는 것 말고는 문화유적으로서 큰 특징은 없어 보인다.
이천년의 세월을 지내온 신라왕조의 시조왕과 다음 왕들의 무덤이라고 보면 역사의 무게는 느껴진다. 오릉의 주위 동 남 북쪽 삼면에는 다양한 모양의 많은 소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좋다. 키큰 소나무들이 곧게 뻗거나 이리저리 구부러져 가지를 내밀며 자태를 자랑하고 있어 아주 품위있고 멋있어 보인다.
오릉을 돌아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부인이 탄생한 설화를 지닌 알영정이 아담한 기와집으로 되어 있다. 앞에는 작은 사당같이 기와로 만든 집안에 신라시조왕비탄강유지(新羅始祖王妃誕降遺址)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알영정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이 태어난 우물이다. 옛 문헌에는 알영정이 경주부 남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알영정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옆구리로 여자 아이를 낳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데려다 길렀으며, 우물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알영은 자라면서 빼어난 용모와 덕행을 갖추었는데 시조왕께서 소문을 듣고 왕비로 맞아 들였다. 일영 왕비는 행실이 어질고 보필을 잘 하여 당시 사람들은 왕과 왕비를 두 성인(聖人)이라 불렀다고 한다."
작은 문을 들어서니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그 중간에는 아주 작은 섬처럼 되어 잘 다듬어진 소나무가 한그루 멋있게 자라고 있다. 전해오는 설화에 의하면 알영부인이 알영정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입술이 닭의 입술처럼 생겼는데, 냇가에 가서 목욕을 시키니 그 부리가 빠져나갔다고 한다.
알영정을 나와 쭉 돌아서 걸어가면 박혁거세왕의 신위를 모신 숭덕전(崇德殿)이 나온다. 아담하게 담으로 둘러싸여 담앞에 나무가 가득 심겨져 아름다워 보인다. 키큰 목련이 여러 그루 심겨져 있는데 봄에 숭덕전의 목련꽃이 매우 예쁘다고 소문나 있다.
숭덕전 앞에도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숭덕전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건물로 ----숙종 30년(1704)에 고쳤다. 경종 3년(1723) 숭덕전이라 편액을 걸었는데 현재의 모습은 영조 11년(1735)에 고친 것이다.
홍살문 안쪽으로 영숭문(永崇門)과 숙경문(肅敬門)을 지나면 숭덕전이 위치하고 있다. 숭덕전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인 맞배집이다. 왼쪽에 상현재(象賢齋), 오른쪽에 동재(東齋)가 있다. 영숭문의 왼쪽에 시조왕의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
숭덕전은 후손들이 제향을 지내기 때문에 평소에는 문을 잠그고 개방하지 않아 안에 들어가 구경할 수가 없다. 그 입구에는 신도(神道)라고 성스러운 곳으로 표시하면서 올라가지 못하게 하여, 신라시조왕을 모시는 후손들의 태도가 매우 경건함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오릉을 다 둘러보면 왕릉과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한적한 공원같은 느낌이 든다. 넓은 경내에는 나무들도 숲을 이루어 그런 느낌을 더욱 들게 한다. 조금은 허술하게 보여도 산책을 하고 휴식을 하기에는 매우 좋은 곳이다. 그리고 낡고 한적한 분위기가 오히려 흘러간 신라의 모습같아 역사의 무상함을 느끼게도 해준다.